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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2014. 1. 17. 21:3620살. 지하철도 못 타는 제주도 촌놈이 서울로 올라와 고모를 찾아갔다. 안성에 있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어디 해외를 간 것도 아닌데 엄마는 왜 그렇게도 우시던지 괜히 같이 울어야 될 것 같았다. 집안 사정상 재수는 힘들었고 그렇게 속물이던 20살에 꼬꼬마는 동기들에게 왜 이 학교를 왔는지 도망치듯 물어댔고 변명하듯이 술을 마셨다. 깔봐야만 다닐수 있을 것 같던 학교에서 농구를 하다 자신보다 훌쩍 어른스러운 선배를 만나 쫓아다녔다. 영화를 보는 눈을 따라하고 음악 취향도 따라하고 심지어 말투까지 따라했다. 성장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22살. 영화가 하고 싶었다. 영화를 찍을수 없다면 영화에 관련된 글이라도 쓰고 싶었다. 3끼 밥 챙겨먹듯이 영화를 보고 쓰고 또 썼다. 쓴 것을 마치 문제지의 정답을 채점하듯이 좋아하는 평론가의 글과 비교하고 다시 영화를 봤다. 겸손하고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으며 살고 싶었지만 남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서 신춘 문예 같은 것을 준비했고 남의 입에서 오-오 하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몇 편이 단편 소설을 쓰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면 좋았으련만-
취직을 했다. 원형을 그려놓고 이게 방송바닥이라면 테두리에서 중점을 바라봐야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진보적인 삶을 살고 싶었지만 지나칠 정도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회인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뭔지 방송바닥은 평면적인 원이 아니라 입체적인 개미지옥이었다. 살짝 발을 담그면 미끄러지듯 중점에 서 있는 기분. 겉으로는 도전이 무섭지 않은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깔봐야만 다닐수 있을 것 같던 방송바닥에서 자신보다 훌쩍 어른스러운 선배를 만나 쫓아다녔다. 영상을 다루는 기술을 따라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따라하고 심지어 말투까지 따라했다. 어쩌면 사람은 영원히 변화하지 않을지도 몰라. 연차가 쌓여가면서 후배가 하나 둘 생기다 보니 자신의 기준에 맞추는 선배가 되어갔다. 나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어. 나는 선배한테 기회를 얻으려고 잠도 안잤어. 나는. 나는. 나는. 술 몇 잔에 후배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농구하듯이 살고 싶었다. 남을 위해 스크린을 서고 남을 위해 박스아웃을 하고 남을 위해 오펜스 리바운드를 하고 남을 위해 패스를 하는 삶. 하지만 자신을 위한 농구를 하는 볼호그가 되어있었다. 어쩌면 사람은 지독하게 이중적일지도 몰라.
그래도 다행히 겁이 많아 열심히 했다. 팀장님이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무서워서 가편본을 보고 또 봤고 메인 작가님의 한숨이 무서워서 구성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방송 분량의 5분 정도 감당할수 있던 것이 10분, 15분, 30분, 45분 늘어가면서 여유라는 것도 생기고 용감하게도 소홀해지는 부분들이 생겼다. 정체는 항상 이런식이 아날까-
촬영과 편집과 구성도 중요하다. 수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그리고 작년부터 기획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생소했다. 뭐랄까, 제작은 열심히 뛰고 즐기는 것이라면 기획은 열심히 뛰고 즐길수 있는 판을 짜는 것 같다. 요즘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런 단순 명료한 판을 짜기 위해서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고민했을지 대단할 뿐이었다.
30살. 의미있는 지점일수도 있고 그냥 숫자놀이일수도 있다. 지나치게 감흥이 없어서 20살을 되돌아보니 얼마만큼의 성장한 자신이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아직도 상상하던 30살의 자신은 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다행스러웠다. 계획대로 되지 않던 작년 때문에 지금 조금 쫓기고 있지만 그래도 판을 조금씩 짜보려고 한다. 단순 명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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