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안 이충민 객원기자]숱한 화제를 뿌렸던 하얀거탑이 지난 11일 종영했다. 마지막 20부에서는 장준혁의 죽음으로 마무리 하면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현재 하얀거탑은 온-오프 할 것 없이 열광적인 환호성으로 가득하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김명민이 연기한 장준혁 캐릭터에 대한 성원만이 넘쳐난다. 이 때문인지 하얀거탑의 부족한 점은 철저히 감추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판단하자면, 야마자키 도요코의 원작에 충실하지 못한 이야기 구조상의 모순을 지적하고 싶다.
◇ 장준혁의 최후 ⓒ MBC
하얀거탑 최대의 약점은 가치관의 대립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부분이다. 단순한 흑백 대립 수준에 머물러 진한 아쉬움이 든다. 몇 가지 구체적인 이야기 전개를 통해 알아보자면, 장준혁이 오진해 숨진 환자를 병리학 과장이 부검할 때다. 장준혁은 최도영에게 불같이 화를 낸다.
“최도영! 니가 부검하자 했다며?
“준혁아! 일가족이 원한거야”
“그거나. 그거나. 친구의 진단을 믿고 어떻게 하든 부검을 막았어야 하잖아. 도영아 넌? 동업자 의식 없어?
“준혁아. 너생각 안한 거 아냐. 그것보다 유가족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줘야…그래야 유가족도 납득하지.”
“최도영! 너의 비현실적인 방법에 이젠 염증이 난다.
장준혁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최도영의 상반된 가치관, 즉 설득력 있는 주장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장준혁은 단 한 번도 최도영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최도영은 장준혁과 죽마고우라는 사실 때문에 마음 약한, 우유부단한 태도만 유지할 뿐이다.
또 다른 장면을 보자면, 숨진 환자의 가족과 변호사가 최도영 집에 찾아와 증언대에 서줄 것을 부탁할 때다.
“의사 선생님 저희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저희한테 유리한 증언 부탁드립니다.”
최도영은 단 칼에 거절한다. “죄송합니다. 전 증언 할 수 없습니다.”
원작소설은 물론 일본판 <백색의 거탑>과도 전혀 다른, 상반된 진행이다. 스토리가 달라서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최도영 캐릭터가 살아나지 않아서 문제다. 오로지 장준혁 ‘교주’를 위한 하얀거탑이기 때문이다.
최도영은 장준혁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고 부하 직원을 질책한 적도 있다. 자신조차 증언대에 서지 않은 상황에서 남을 탓하는 모순을 보여준다. 일본판은 사토미 슈지가 환자가 부탁하기 전에 이미 증언대에 자진 출두하는 모습을 보여줘 자이젠 고로와의 가치관 대립이 극에 달했었다.
한국판 하얀거탑은 가치관 대립 대신 일반인이 받아들이기 쉬운, 자극적이고 단순한 ‘선과 악’ 대결에만 초점을 맞췄다. 장준혁을 권력욕구에 목매는, 그래서 최도영을 전혀 배려해주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캐릭터로 포장해 놓았다. 노골적인 휴머니스트 최도영의 입지를 철저히 줄이는 대신 장준혁의 비중을 절대적으로 높여 놓았던 것이다. 게다가 장준혁을 사리사욕에만 얽매인 비굴한 남자로 묘사해 놓았다.
반면, 원작소설과 2003년작 일본판 자이젠 고로는 명예획득을 그토록 원했던 이유, 진심, 속내가 절묘하게 표현됐다. 자이젠 고로는 숨을 거두기 직전 사토미 슈지의 이름을 부르며 말한다.
“사토미 슈지…드디어 새로 건립된 암 센터 내과부장을 맡아주기로 했구나. 이걸로 내 암 센터도 반석 위에 선거야.
“카나코 씨(대학병원의 침대 확보를 위해 강제퇴원 당한 불치병 환자), 당신도 우리 암 센터에 입원한다면 침대를 내드릴게요. 제가 센터장이거든요.”
“그리고 사토미 슈지, 사사키 씨(자이젠 고로의 오진으로 숨진 환자)에게는 한 마디정도 해줄 수 있겠지? 전이가 아니었다면, 암 자체는 나 밖에 수술 할 수 없었다고.”
“세상을 바꾸자고 했었는데, 둘이서 같이 세상을 바꾸자고 했었는데, 둘이서 같이…둘이서 같이…사토미…”
일본판 장준혁인 자이젠 고로가 정작 무엇을 원했던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이젠 고로는 <백색의 거탑> 마지막 장면뿐만이 아니라 극 중간 중간에도 사토미 슈지와 가치관 갈등을 겪게 된다.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카나코(키무라 타에)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절망에 빠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암에 걸린 사람이 어떻게 죽음을 맞는지… 전 가족이 없어요. 일만 해왔기 때문에 애인도 없어요. 라이벌은 있어도 친구는 없어요. 사토미 선생님, 제가 죽는 순간까지 곁에 있어 주세요. 제가 믿는 사람이 곁에 있어 주어야만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판 최도영(사토미 슈지)은 카나코에게 같이 있어 주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카나코는 며칠 뒤, 대학병원측이 침대확보를 위해 불치병 환자 포기라는 역겨운 관행을 눈치 채게 된다. 곧 자의반 타의반으로 등 떠밀려 퇴원하게 된다. 사토미 슈지는 카나코가 떠난 직후 갈등했다. “내가 무리한걸까? 그녀를 괴롭힌 걸지도…”
대학병원은 치료가 최우선 목적이 아니라 돈이 최우선 목표다. 환자는 곧 돈이다. 사토미 슈지 혼자서 대학병원의 지나친 상업성 추구라는 부조리한 관행을 타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본판 장준혁(자이젠 고로)은 심난해진 사토미 슈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조언한다.
“나라면 카나코를 훨씬 더 빨리 능숙하게 퇴원시켰을 거야. 고민만 하는 게 환자를 위한다고 볼 수 없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거든. 그래서 난 교수가 될 거야. 확실한 것을 원하니깐.”
또 다른 장면에서 자이젠 고로와 사토미 슈지는 똑같이 서로에게 “의사는 신이 아닌, 인간”임을 강조한 적이 있다. 하지만 사토미 슈지가 언성을 높혀 “어떠한 경우라고 환자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주장할 때 자이젠 고로는 “의사는 신이 아니야. 인간일 뿐”이라고 되받아쳤다.
다음 장면에서는 자이젠 고로가 “환자에게 의학전문용어를 남발해서 우롱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절대로 걱정 없다는 강한 한마디 어조가 안심 시킬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토미 슈지도 자이젠 고로에게 “의사는 신이 아니라 환자와 똑같은 인간이야.”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 자이젠 고로 시신, 의학발전 위해…대학병원에 기증 ⓒ 후지TV 백색의 거탑 캡쳐
자이젠 고로는 사토미 슈지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 녀석은 명예 같은 건 쫓지 않아. 그렇다고 게으름 피는 것도 아니고. 단지 환자를 위해서, 의학을 위해서야. 곤란하지. 저 녀석이 하는 얘기가 거짓이 아니라면 내가 곤란해져”
한국판 하안거탑 결말은 야마자키 도요코 원작소설과 2003년 일본판 드라마 내용처럼 장준혁의 죽음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장준혁은 원작과 달리 자신이 원했던 그 무엇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그 무엇이란 환자 중심의 대학병원 구현이라는 속내다. 선과 악의 대립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장준혁과 최도영의 어긋난 가치관 대립, 그에 따른 구체적인 상황설정이 전혀 묘사되지 않아 아쉽다. 개인적으로 한국판 하얀거탑이 대작일 수 없는 이유다./ 이충민 객원기자
그렇기 때문에 일본판 하얀거탑과의 비교에서 언급된것처럼
한국판 하얀거탑에서는 가치관의 대립이 아니라 장준혁이라는 인물을
상세히 묘사하여 이러한 은폐적인 인간의 성향을 거듭 상기해보자는 의도가 아니였나 싶다.
까지가 있어보일려고 쓴 내용.
"누가 봐도 좋은 기회라는 건 말입니다, 말 그대로 누가 봤기 때문에 절대 좋은 기회가 아닙니다."
"그런걸 보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내가 자네 의사가운 벗길 수 있다는 것 아나?"
"죽은 사람은 못 먹는 거야. 감사하게 먹어"
"해! 할 거야 절대 포기 못해! 나 할 거야 나! 나도 나도 너처럼 나를 믿고"
"명인대학병원 외과에 게속 남고 싶지 않아?"
"보통 아킬레스건은 가장 약한 곳이지만 상대에 따라 가장 강한 곳이 아킬레스건인 사람도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