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Posted 2014. 1. 17. 21:36

 20살. 지하철도 못 타는 제주도 촌놈이 서울로 올라와 고모를 찾아갔다. 안성에 있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어디 해외를 간 것도 아닌데 엄마는 왜 그렇게도 우시던지 괜히 같이 울어야 될 것 같았다. 집안 사정상 재수는 힘들었고 그렇게 속물이던 20살에 꼬꼬마는 동기들에게 왜 이 학교를 왔는지 도망치듯 물어댔고 변명하듯이 술을 마셨다. 깔봐야만 다닐수 있을 것 같던 학교에서 농구를 하다 자신보다 훌쩍 어른스러운 선배를 만나 쫓아다녔다. 영화를 보는 눈을 따라하고 음악 취향도 따라하고 심지어 말투까지 따라했다. 성장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22살. 영화가 하고 싶었다. 영화를 찍을수 없다면 영화에 관련된 글이라도 쓰고 싶었다. 3끼 밥 챙겨먹듯이 영화를 보고 쓰고 또 썼다. 쓴 것을 마치 문제지의 정답을 채점하듯이 좋아하는 평론가의 글과 비교하고 다시 영화를 봤다. 겸손하고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으며 살고 싶었지만 남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서 신춘 문예 같은 것을 준비했고 남의 입에서 오-오 하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 몇 편이 단편 소설을 쓰고 나서야 현실로 돌아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면 좋았으련만-

 취직을 했다. 원형을 그려놓고 이게 방송바닥이라면 테두리에서 중점을 바라봐야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진보적인 삶을 살고 싶었지만 지나칠 정도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회인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뭔지 방송바닥은 평면적인 원이 아니라 입체적인 개미지옥이었다. 살짝 발을 담그면 미끄러지듯 중점에 서 있는 기분. 겉으로는 도전이 무섭지 않은 사회인이 되어있었다.

 깔봐야만 다닐수 있을 것 같던 방송바닥에서 자신보다 훌쩍 어른스러운 선배를 만나 쫓아다녔다. 영상을 다루는 기술을 따라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따라하고 심지어 말투까지 따라했다. 어쩌면 사람은 영원히 변화하지 않을지도 몰라. 연차가 쌓여가면서 후배가 하나 둘 생기다 보니 자신의 기준에 맞추는 선배가 되어갔다. 나는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어. 나는 선배한테 기회를 얻으려고 잠도 안잤어. 나는. 나는. 나는. 술 몇 잔에 후배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농구하듯이 살고 싶었다. 남을 위해 스크린을 서고 남을 위해 박스아웃을 하고 남을 위해 오펜스 리바운드를 하고 남을 위해 패스를 하는 삶. 하지만 자신을 위한 농구를 하는 볼호그가 되어있었다. 어쩌면 사람은 지독하게 이중적일지도 몰라.

 그래도 다행히 겁이 많아 열심히 했다. 팀장님이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무서워서 가편본을 보고 또 봤고 메인 작가님의 한숨이 무서워서 구성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방송 분량의 5분 정도 감당할수 있던 것이 10분, 15분, 30분, 45분 늘어가면서 여유라는 것도 생기고 용감하게도 소홀해지는 부분들이 생겼다. 정체는 항상 이런식이 아날까-

 촬영과 편집과 구성도 중요하다. 수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그리고 작년부터 기획에 참가하기 시작했다. 생소했다. 뭐랄까, 제작은 열심히 뛰고 즐기는 것이라면 기획은 열심히 뛰고 즐길수 있는 판을 짜는 것 같다. 요즘 화제가 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저런 단순 명료한 판을 짜기 위해서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경우의 수를 고민했을지 대단할 뿐이었다.

 30살. 의미있는 지점일수도 있고 그냥 숫자놀이일수도 있다. 지나치게 감흥이 없어서 20살을 되돌아보니 얼마만큼의 성장한 자신이 다행스러웠다. 그리고 아직도 상상하던 30살의 자신은 되지 못했다는 사실도 다행스러웠다. 계획대로 되지 않던 작년 때문에 지금 조금 쫓기고 있지만 그래도 판을 조금씩 짜보려고 한다. 단순 명료하게-

'in Real.C' 카테고리의 다른 글

Rhymenote 140926-  (0) 2014.09.26
비정상회담.  (0) 2014.07.16
Rhyme note140115-  (0) 2014.01.15
Rhyme note 131217-  (0) 2013.12.17
Rhyme note 130827-  (0) 2013.08.27

Rhyme note140115-

Posted 2014. 1. 15. 18:26

1.

더 지니어스.

시즌 2 전에 시즌 1을 정주행하고 노홍철이 섭외됐다는 것을 알았을때 굉장히 기대감이 컸다. 게다가 임요환까지-! 갓진호 때문에 프로게이머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기 때문에 상당히 좋은 조합이 될거라는 기대는 얼마가지 않아 발암 프로그램에 대한 분노로 변해버렸다. 4회까지만 해도 적어도 나만큼은 기대감이 남아있었다. 이은결은 돌발적인 배신을 했고 거의 강압적으로 대가를 요구했다. 이은결이 배신을 하게되면 이익을 얻게되는 연예인 연합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듣기 거슬리게 노홍철-은지원-이상민을 지목하면서 은지원을 탈락시켜달라는 이은결의 요구는 심리전 측면에서 최악의 수다. 다음은 자신이 될지 모르는 저격을 누가 도와주겠나. 5회 역시 홍진호가 무한 칩 생성이 아쉽기는 했지만 임윤선은 저돌적인 행동은 연예인 연합을 지나치게 거슬리게 했다. 충분히 명분이 있는 숙청이었다.

 문제는 6회에 있다. 이미 인터넷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두희의 신분증 사건은 이제 더 지니어스 시즌 2에서 게임은 없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각인시켰다. 두뇌 싸움 같은건 상관없이 자신의 생존만이 남아있다. 더 지니어스는 단순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아니라 두뇌를 통한 서바이벌이다.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박살내어버린 이 사건은(물론 지나칠 정도로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기는 하지만) 출연자의 인성까지 문제를 확장시키며 시청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그리고 제작진은 롤 브레이커라는 부제로 출연자를 보호하면서도 은지원의 데쓰매치 배신에 세트장 구석에서 홀로 울었다는 이두희를 기사에 보도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노이즈 마케팅에만 치중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홍진호는 게임 한번 제대로 못하고 세트장 가운데에 축-쳐진 몸을 의자에 기대고 있고 이두희는 드러누웠으며 임요환은 증표를 뺏기다시피 한 이 상황에서 비연예인 연합이 무엇을 할수 있을까. 홍진호가 두려운 존재라는 명분은 가지고 밀어붙이는 이 연예인 연합이 성공적으로 살아남았을때 그들이 펼치는 게임을 도대체 누가 보고 싶어한다는 말인가.


2.

마녀사냥

 예상대로 마녀사냥은 긴 여정을 위한 준비를 맞췄다. 초반 시청률이 부진했지만 저 정도의 틀이면 단순히 10,12회로 주저 앉을것 같지 않았다. 마치 썰전처럼 마녀사냥은 이제 긴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일회일비하는 요즘 각박한 방송계에서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려 한다.


3.

나 혼자 산다.

 기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트랜드를 읽는 눈이 아닐까- 그 트랜드 위에 판을 짜고 캐릭터를 고르는 것도 좋은 기획의 방법이 된다는 것을 나 혼자 산다를 볼 때마다 느낀다.

'in Real.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정상회담.  (0) 2014.07.16
30-  (1) 2014.01.17
Rhyme note 131217-  (0) 2013.12.17
Rhyme note 130827-  (0) 2013.08.27
잡생각을 따라가다-  (0) 2013.04.20

변호인.

Posted 2013. 12. 24. 19:31

 부림 사건이라는 실제사건을 영화화한 변호인은 송우석이라는 인물에 집중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송우석의 입체성으로 인해 영화는 방향을 틀고 상승하며 폭발한다. 송강호가 지닌 짝눈은 그런 내면을 그대로 빚어내고 심심한 위트와 급한 성격과 흥분을 잘하는 모습까지 아우르며 극의 중점을 찍어낸다. 특히 공판에서는 간결하고 공격적인 대사를 소름끼칠 정도로 능수능란하게 쏘아붙인다.(무려 송강호가 연기 리허설을 했다고 하니 뭐..)

 그리고 변호인은 잘 정리된 영화다. 플래시백을 사용한 것이 오히려 이야기의 매듭을 푸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인물을 위해 배경을 정리한 것 같은 느낌. 극장에 생각보다 나이 있으신 관객도 많던데 이런 친절함은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것 같다. 그리고 송우석이 첫 진술을 할때 긴 롱 테이크는 마치 부림 사건의 진실을 기록으로 보는 것 같다.

 송우석이 증인으로 나온 차동영과 대면하는 씬은 가히 폭발적이다. 마치 다른 국가관이라는 이성이 충돌하는 듯 보이다가 감성을 통해 분노로 솟아 오르는 송강호의 연기를 보는 쾌감이 이 영화의 백미가 아닐까-


ps. 영화가 끝나고 스텝 스크롤이 올라갈때 든 생각 - 살아계셨다면 직접 보시고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 허허. 내가 저리 팔다리가 길겠어,하고 웃지 않으셨을까.

'life of fic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 2014)  (0) 2014.06.11
역린.  (0) 2014.05.19
관상.  (0) 2013.09.18
설국열차.  (0) 2013.08.27
Stoker, 2013.  (0) 2013.08.27
« PREV : 1 : ··· : 5 : 6 : 7 : 8 : 9 : 10 : 11 : ··· : 237 : NEXT »